일자리가 사라지는 건설 현장
12개월째 일자리 감소 현실
“2008년보다 더 암울한 상황”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현장에 나갈 곳이 있었는데, 이제는 전화도 안 옵니다.” 20년 경력의 건설 현장 반장 김 모(52) 씨의 한숨이 무겁다.
그는 지난 3개월간 단 한 건의 일자리도 구하지 못했다. 올해 들어 건설 현장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이 15일 발표한 충격적인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건설경기 침체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도 단순한 경기 하락이 아닌 ‘구조적 복합성’을 띤 위기라는 분석이다.

충격적인 지표들, “2008년보다 더 심각하다”
건산연이 공개한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한 최근 건설경기 진단과 대응 방안’ 보고서는 여러 통계를 통해 현 상황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건설경기의 미래를 예측하는 선행지표인 건설수주(경상)는 2023년 전년 대비 16.6% 감소해 금융위기 시기인 2008년(-6.1%)보다 감소폭이 훨씬 크다.
이러한 추세는 다른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건축 착공면적은 2008년에는 전년 대비 22.2% 감소했으나, 2023년에는 31.7%나 줄어들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건설 활동의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건설기성(경상)이 2024년에는 -3.2%로 하락 전환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금까지 성장세를 유지해 왔던 수치가 마이너스로 돌아섰음을 의미한다.
일자리 위기, 12개월 연속 감소세
이러한 건설경기 침체는 일자리 시장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통계청이 14일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건설업 취업자는 194만 8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5만 명이나 줄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감소세가 지난해 5월부터 12개월째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장에서는 이미 위기감이 팽배합니다. 일용직은 물론이고 경력직 기술자들도 일거리를 찾지 못해 다른 업종으로 떠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건설노동자 모임의 박진호 대표는 이처럼 암울한 현장 상황을 전했다. 이는 건설업 종사자들이 직면한 현실적 어려움을 보여준다.
저성장과 금리 부담, 이중고
건산연은 이번 위기의 구조적 복합성을 설명하며 몇 가지 주요 원인을 지적했다.

먼저 경제 저성장이 핵심 문제로 대두된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5.8%였던 GDP 성장률은 위기 이후 반등해 3% 안팎을 유지했지만, 최근에는 2023년 1.4%, 2024년 2.0%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저성장 기조는 건설 수요 자체를 위축시키는 근본적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2008년 금융위기 때는 기준금리가 5.25%에서 2.0%까지 급격히 인하되며 유동성이 신속하게 공급됐지만,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와 물가안정 기조로 인해 금리 인하 속도가 훨씬 더디어 올 5월 기준금리는 여전히 2.75%를 기록 중이다. 이는 건설 시장의 자금 유동성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여기에 자잿값 급등과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공사비 증가는 건설사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으며, 대출 규제와 고금리 부담에 따른 주택 수요 위축으로 인해 미분양 물량도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 요인들이 맞물려 건설경기의 장기 침체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건산연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공공 발주 정상화, 도심 재정비사업 활성화를 통한 유동성 공급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중장기적으로는 민간 자본의 적극적 활용, 공사비와 기간 현실화, 인력 수급 문제 대응 등 산업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건설업계와 종사자들의 고통은 더욱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