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에서 산업국으로 변신 중인 중동
AI·공조·방산까지…
한국 기업 ‘진짜 기회’ 왔다

“중동은 이제 더 이상 석유만 파는 나라가 아니다.”
한 무역업계 관계자의 말처럼, 변화하는 중동 시장은 지금 한국 기업들에게 전례 없는 기회를 던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유가에 경제의 명운을 걸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산유국들이 이제는 ‘산업 국가’로 탈바꿈하고 있다.
제조업, 관광, 엔터테인먼트, AI와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눈을 돌리면서, 이 변화의 흐름에 한국 기업들이 빠르게 발을 맞추고 있다.
자동차부터 공조, 반도체까지… 현지화로 승부

현대자동차는 사우디 자동차 산업단지 한복판에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국부펀드와 합작해 만든 이 공장은 2026년부터 연간 5만 대 규모의 차량을 생산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중동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냉난방공조(HVAC) 분야는 연중 고온 다습한 중동 기후와 대규모 도시개발 프로젝트가 맞물리며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중동 바이어 40여 명을 중국 행사장에 초청해 ‘맞춤형 스마트 공조 솔루션’을 대대적으로 선보였다.

방산에게 중동은 말 그대로 ‘기회의 땅’이 됐다. LIG넥스원은 사우디·UAE·이라크에 지대공 미사일 ‘천궁-Ⅱ’를 수출했고,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헬기 ‘수리온’을 이라크에 처음으로 판매했다.
중동은 군 현대화 수요가 크고, 다양한 공급망을 원하기 때문에 한국산 무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IT 인프라 역시 주목할 만하다. 최근 미국이 중동에 대한 AI 반도체 수출 제한을 해제하면서, 엔비디아는 사우디에 1만 8000개의 AI 칩을 공급하기로 했고, 오픈AI는 UAE에 데이터센터 설립을 논의 중이다.
이 여파로 고성능 메모리를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호재가 될 전망이다.

HVAC와 데이터센터 전력 장비를 공급하는 전력기기 업계도 중동 특수를 누리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중동 수출로 1분기 3200억 원을 수주하며 지난해 대비 60% 이상 성장했다.
더 이상 ‘석유만 파는 나라’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5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성장률을 최대 4%로 예측했다.
UAE는 비석유 산업 비중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있으며, 관광·스마트시티·재생에너지·IT 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 흐름에 맞춰 한국 기업들은 단순 수출을 넘어 현지화, 기술이전, 합작 법인 설립 등 장기적 전략을 펼치고 있다.
석유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중동의 변화를 얼마나 빠르게 이해하고 맞춤형 전략을 내놓느냐가 앞으로의 승부를 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