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수출·소비 모두 흔들…경기 엔진 멈췄다
‘경기 둔화’ 2년 만에 공식 언급…KDI의 수위 조정
통계보다 깊은 고용·투자 부진, 대응 시급해졌다

“지금도 이렇게 빠듯한데, 더 나빠진다니 막막하죠.”
맞벌이로 두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 이모 씨는 최근 장바구니 물가와 대출 이자에 시달리며 지출을 하나하나 다시 따지고 있다.
그나마 버티고 있던 살림살이에 ‘경기 둔화’라는 말이 다시 등장하자, 앞으로의 삶이 더 팍팍해질 것 같아 불안감이 커졌다.
이씨는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예상치 못한 지출이라도 생기면 정말 감당이 안 될 것 같다”며 “아이들 학원비부터 줄여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2025년 5월 경제동향’에서 우리 경제가 본격적인 ‘경기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공식적으로 진단했다.
이는 수치상 악화된 지표를 넘어, 일자리 감소, 장바구니 부담 증가, 위축된 소비 여력 등 서민들의 삶 전반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구조적인 흐름이 본격화됐다는 의미다.
특히 이번 발표는 2년 전 ‘경기 둔화’를 언급했던 시점과 닮아있어, 다시 한 번 실물경제에 대한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진다.
체감 물가는 더 높다…서민 살림 압박하는 ‘조용한 인플레’
고용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3월 취업자 수는 전년보다 19만3000명 늘었지만, 그중 15만5000명이 정부 재정 일자리 사업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기업의 고용 창출은 지지부진한 반면, 건설업과 제조업에선 취업자가 각각 18만5000명, 11만2000명씩 감소했다. 특히 청년층 실업률은 6.3%에서 6.6%로 높아지며, 노동시장의 체감 온도는 점점 싸늘해지고 있다.
직장을 구하기 어렵거나 일감이 줄어들면, 당연히 소비도 움츠러든다. 4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3.8로 여전히 기준선인 100을 밑돌고 있으며, 사람들은 ‘꼭 필요한 것’만 사고, ‘하고 싶은 것’은 미루는 선택을 한다.
월 소매 판매는 승용차를 제외하면 전년 대비 0.5% 증가에 그쳤고, 숙박·음식점업 소비는 -3.7%로 감소했다. 이는 자영업자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된다. 손님은 줄고, 고정비는 그대로다. 폐업을 고민하는 가게가 하나둘 늘어나는 이유다.
물가도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4월 소비자물가는 전월과 같은 2.1% 상승률을 기록했지만, 세부를 들여다보면 불안 요소가 여럿 보인다.

국제 유가는 하락했지만, 환율 상승과 보험료 인상 등으로 생필품 가격의 체감 물가는 더 크게 오르고 있다.
특히 수입 부품과 자재에 의존하는 품목들의 경우, 조용한 가격 상승이 지속 중이다. 이는 식비뿐 아니라 차량 유지비, 병원비, 교육비 등 전반적인 생활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생활로 번지는 침체의 그림자…지금은 선제 대응이 필요할 때
수출과 투자도 불확실성을 더한다. 미국 관세 인상 여파로 대미 수출은 -10.6%를 기록했고, 자동차(-20.7%)와 철강(-11.6%)처럼 관세 대상 품목의 충격은 더 컸다.
이에 기업들의 투자 움직임도 둔하다. 3월 설비투자가 반도체 장비 수입 덕에 14.1% 증가했지만, 투자심리를 보여주는 설비투자전망 BSI는 90으로 장기 평균에 못 미쳤다.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고용, 임금, 생산 모두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KDI의 이번 발표는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돌던 경고가 아닌, 서민들의 하루하루 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다.
일자리 불안, 지갑 사정의 악화, 소비 위축이라는 세 줄기 흐름이 맞물리면서 서민의 삶은 점차 압박을 느끼는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밀한 대응이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서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촘촘한 안전망이 필요하다. 고용 안정, 물가 관리, 실효성 있는 경기 부양책이 함께 작동해야만 이 거대한 둔화의 흐름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민감하게 변화의 징후를 감지하고, 신속히 움직여야 할 때다. 안일한 대처는 더 큰 타격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